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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 Life]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서울경제 2013.01.31)
작성자 dacine
날짜 2013.02.03
조회수 2,196

[Culture & Life]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76세 나이는 숫자에 불과
공직→영화제 위원장→영화감독
인생3막 도전 계속해야죠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 맡으며 영화와 인연
공직 퇴직후 친화력 발휘 부산영화제 15년 이끌어
새벽운동 등 철저한 자기관리가 '영원한 청년' 밑거름

작년 제작 단편영화 '주리' 베를린영화제 초청
관객과 대화때 어떤 질문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


희끗희끗한 눈썹, 정갈하게 빗어 넘긴 머리, 정돈된 옷 매무새, 마음씨 좋은 옆집 할아버지 마냥 인자한 표정과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는 노 신사. 혹자는 그를 영원한 청년이자 영화계의'큰 어른'이라 칭한다. 그는 15년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일하며 문화 불모지 부산을 세계적인 영화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큰 힘이 됐다. 지금도 일흔 여섯의 나이가 무색하게 자신이 쌓은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공직생활로 인생 1막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인생 2막을 보냈던 그가 지난해엔 감독으로 인생 3막을 펼쳤다. 지난해 11월'제10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 그의 첫 단편 영화'JURY'(주리)는 오는 7일 열리는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받기도 했다. 얼핏 보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지만 속에는 젊은이 못지않은 지독한 열정과 철저한 자기관리가 숨어있는 사람, 바로 김동호(76·사진) 부산국제영화제 명예 집행위원장이다. 추위가 한 풀 꺾인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걸어온 지난날의 발자취와 앞으로 걸어갈 날들, 지금의 그를 이끈 변함없는 신념 등에 대해 들었다.

◇ 공무원이 영화와 연을 맺기까지

기자와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김 위원장은 양복 안 주머니에서 수첩 하나를 꺼내 들었다. 무언가 기록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손 너머로 보이는 수첩에는 빼곡히 지나온 시간에 대한 기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화계에 이미 널리 알려진 그의 놀라운 기억력은 모두 이 수첩에서 비롯된 듯 보였다.

"61년 문화공보부에 들어가 처음 있었던 곳이 기획관리실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공보부의 한 해 기획과 예산을 총괄하는 부서죠. 그 당시 예산이 어디에 어떤 용도로 쓰였는지,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등을 수첩에 적어 놓기 시작한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지금도 수첩을 펼쳐보면 그 당시의 일들을 거의 완벽하게 복기하는 게 가능합니다."

김 위원장은 경기중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고시를 포기하고 24세 때 문화공보부 7급 주사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승진시험을 통해 초고속 승진한 그는 8년 동안의'최장수 기획관리실장' 기록을 세우며 다섯 명의 장관을 모셨다. 문화체육부 차관을 마지막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뒤 예술의전당 사장, 공연윤리위원장을 역임했다. 토종 영화인이 아닌 그가 영화와 연을 맺게 된 건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다.'낙하산 인사'라는 영화계의 반발에도 그는 흔들림이 없었다. "대학 때는 영화를 많이 접하지 못했지만, 영화진흥공사 사장에 취임하고는 일 년에 100여 편의 영화를 보면서 공부했습니다. 밤낮 가릴 것 없이 영화인들을 직접 만나 현안을 듣고 영화인들의 모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죠."

◇'부산'과의 운명적 만남

우연이 때로는 필연이 되는 경우가 많다. 거스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인연을 받아 들이니 김 위원장에게는 이내 새로운 인연이 찾아 들었다.

"공연윤리심의위원회에서 물러나고 백수로 있었을 때였죠. 1995년 8월 18일 오전10시 플라자호텔이었을 겁니다.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용관 교수와 김지석 프로그래머(당시 부산 예술문화대학교 영화과 교수), 현재 부산국제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전양준 씨가 찾아와 부산에 국제영화제를 함께 만들어 보자고 하더군요. 물론 주변인들은'문화 불모지 부산에서 무슨 영화제냐'며 다들 냉담했죠."

하지만 김 위원장은'부산에서 올라온 세 친구'가 한 시간에 걸쳐 풀어놓는 포부와 열정에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당시 패기 넘치던 젊은 친구들의 열정이 좋았습니다. 이 친구들은 이미 유수의 해외 영화제를 다니며 얻은 경험들도 상당했죠. 나 역시도 영화제를 다니면서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국제영화제를 개최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당시 부산 파라다이스 호텔의 5억 협찬도 약속된 상태라 큰 무리 없이 첫 영화제의 문을 열 수 있을 거라 판단했죠."

그러나 5억원은 계획대로 협찬 받지 못했다. 넋 놓고 기다릴 수 만은 없는 상황, 김 위원장은 특유의 발로 뛰는 친화력으로 앞장섰다.

"집념과 추진하고자 하는 열정을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진흥공사 재직 시절, 남양주 종합촬영소 건립도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45만평 땅을 매입한 후 뒤늦게 그곳이 상수원 보호 핵심구역으로 묶인 상황을 알게 됐죠. 결국 각 부처 말단 직원부터 관련 장까지 만나고 설득하며 협조를 구하고 국토 이용 계획을 바꿔 건립 허가를 받았습니다. 꼬박 3개월이 걸렸죠. 부산영화제도 당초 5억원 협찬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일단 움직였습니다. 부산시장을 찾아가 전체 22억 중 3억원에 대해 부산시의 지원을 약속 받았고 극장 입장권 수입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은 직접 발로 뛰며 기업 협찬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오며 성장하고 있다. 젊은 프로그래머들의 열정에 이끌려 시작한 도전은 그 누구도 생각지 않았던 부산에서 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를 출범시키며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시켰다.

◇ 발로 뛰는 적극성

김 위원장은 지금까지 영화인의 경조사는 모두 잊지 않고 챙기는 걸로 정평이 나 있다. 다른 이가 자신을 찾아 주고 대접 받기를 기다리기보다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가는'적극성' 이 많은 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 아닐까 짐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계기로 지금까지 연을 맺고 있는 네덜란드 언론인이 있습니다. 2년 전 어느 날 본인이 70회 생일을 맞았다고 생일 파티 초대장을 제게 보내더군요. 당장 비행기 표를 사서 호텔을 예약하고 짧은 일정으로 다녀왔습니다. 파티라고 해야 사실 가볍게 맥주와 와인을 곁들여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는 겁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혹은 이것 때문에 비행기 표까지 사서 네덜란드까지 날아가야 하나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원근을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경조사를 챙기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 혹은 일에 있어'진솔함'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늘 한결같은'중용'(中庸)이라는 덕목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 영원한 청년(靑年) 그리고 도전

김 위원장은 수십 년을 매일 아침 5시 잠자리에서 일어난다고 했다. 이후 40분을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으로 보낸다. 주말에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테니스를 친다고 한다. 여기저기 김 위원장을 찾는 곳이 많음에도 100% 가까운 출석률을 보이는 데는 몸에 배인 규칙적인 생활에서 오는 건강함이 단단히 한 몫 하는 듯 보였다. 바깥 활동보다 가족들과 보다 여유롭고 호젓한 생활을 누리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물었다. 너털웃음과 함께"여유도 좋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이 건강 유지의 비결"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흔 여섯의 나이는 그에게 하찮은 장신구에 불과했다. 15년을 이끌어온 부산국제영화제 수장에서 물러나고서도 그의 진취적인 도전은 계속 된다. 최근 무용계와도 인연을 맺었다. 김 위원장은"지난해 가을부터 육완순 현대 무용 50주년 기념사업 공동추진위원장을 맡아 무용계 인사들과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틈나는 대로 유화나 서예 공부를 다시 시작해 보고 싶다"고도 했다. 올해는 출판사 김영사에서 책 한 권을 선보일 계획도 있다. 김 위원장은"전기 형태가 될지, 인터뷰 형태가 될지 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15년 역사를 중심으로 나와 그 밖의 일화들을 합쳐 책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영화와도 꾸준한 연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장으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1인 주주 회사'타이거 시네마'를 만들어 1기생들의 영화 제작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가을 김 위원장은 일흔 다섯의 나이로 감독으로서 처녀작 단편영화'Jury'(주리)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제영화제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사이에 빚어진 갈등을 경쾌하게 그린 작품으로 7일부터 열리는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 공식 초청받았다. 김 위원장은"수많은 영화제에 참여했지만, 감독으로서는 처음이라 어색하기도 하다"며"베를린 현지에서 관객과의 대화 때 어떤 질문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된다"고 설레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영화제 심사위원이 아닌 관객이나 자원봉사자에 초점을 맞추고 'Jury'(주리)와 함께 옴니버스로 묶는 장편 영화를 만들어 올해 안에 선보이고 싶다"는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치지 않는 영원한 청년, 김동호 위원장의 또 다른 도전이 자못 기대된다.

He is…▲1937년강원 홍천 태생 ▲1961년서울대 법대 졸업 ▲1961∼80년문화공보부 문화국장·보도국장·기획관리실장 등 역임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 ▲1992년 서울 예술의전당 초대 사장 ▲1992∼93년 문화부 차관 ▲1993년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 ▲1997년 로테르담 영화제 심사위원장 ▲2007년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 받아 ▲1996년∼2010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2012년 3월~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