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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영화 '주리'로 감독 데뷔(연합뉴스 2012.7.9)
작성자 dacine
날짜 2012.07.10
조회수 2,354
 


 


단편영화 '주리'로 감독 데뷔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김동호(75)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위원장은 국내 영화계에서 '큰 어른'이라 할 만하다.

1988년 영화진흥위원회 전신인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데 이어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로 발돋움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초대부터 15회까지 이끌었다. 지난해 말부터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장을 맡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그가 영화 연출에 처음 도전한다. 오는 11월1일 제10회 아시아나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되는 단편영화 '주리'(Jury.가제)가 그것이다. 촬영 첫날인 9일 저녁, 광화문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김 위원장은 11일까지 촬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 어떻게 영화에 도전하게 됐는가.

▲"영화진흥공사에 갔던 지난 1988년부터 영화 일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거치면서 24년 가까이 영화계 쪽 일을 하다 보니 해외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영화 한 편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만든다면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막연하게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학교 일을 맡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마침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올해 10주년 개막작으로 영화제 심사를 주제로 한 개막영화를 연출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와 흔쾌히 응했다."

영화는 영화제 심사과정에서 벌어지는 웃음과 갈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시나리오는 김 감독과 중국의 장률 감독이 각각 썼고, 두 시나리오를 토대로 윤성호 감독이 각색했다.

-- 부산영화제가 아니라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을 촬영하게 된 게 의외다.

▲"아시아나영화제 측에서 10주년 개막작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영화제 심사를 소재로 한다는 점에서 내가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0여 곳의 해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및 위원장을 역임했다. 내가 겪은 다양한 경험을 녹인다면 첫 작품으로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을 비롯해 수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을 경험했다.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르코프스키영화제, 타이베이영화제 등에서는 심사위원장도 역임했다.

-- 심사위원을 하면서 크게 의견대립을 하거나 싸운 경험은 있는가.

▲"그런 경험은 없다. 다만 영화제 심사를 하면서 위원 간에 의견 일치를 보기가 쉽지 않았다. 2000년대 초반 야마가타 다큐멘터리영화제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김동원 감독,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밤새도록 싸우면서도 어느 작품을 수상작으로 결정할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가와세 감독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김동원 감독이 태아에 지장이 있다고 생각해 결국 양보하기도 했다. 오키나와영화제에서는 한국과 일본 작품을 두고 한일 심사위원이 2대2로 갈린 적이 있었다. 내가 심사위원장이었는데 기권을 했고, 결국 일본영화가 상을 받았다."

 


-- 다년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보통 어떤 영화가 대상으로 선정되나.

▲"통상적으로 최고의 작품이 상을 받기보다는 보편적인 지지를 받는 작품이 수상한다. 심사는 하나의 컨센서스를 이루는 과정이다. 상이란 영화제가 지향하는 화합이나 잔치의 성격에 들어맞아 결정된다. 나는 이번 연출작을 통해 그런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 처음으로 연출에 도전했다. 어떠한가.

▲"상당히 힘들지만 그래도 재미있더라. 여러 컷을 찍어 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배우의 표정, 전반적인 주제 등을 종합해서 최종 컷을 결정하는 게 쉽지는 않다. 내가 표현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장면을 찍고 선택하는 게 힘들었다."

김 위원장이 영화를 찍겠다고 하자, 영화계 전문가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심사위원 역은 안성기, 강수연 정인기, 영국의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 일본 예술영화전용관 이미지포럼의 도미야마 가쓰 대표가 맡았다.

'만추'의 김태용 감독이 조감독, '라디오스타'의 방준석 음악감독이 음악, '투캅스' 시리즈의 강우석 감독이 편집을 담당했다. '주리'가 30분을 넘지 않을 단편영화인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출연진인 셈이다.

-- 그야말로 출연진이 화려하다. 단편영화 역사상 이런 스태프가 참여하기는 국내 영화계에서 처음인 듯싶다.

▲"뿌듯하다. 물론 재능기부지만 한국 대표 영화인들이 출연도 하고 제작에도 참여한다. 내가 혼자 만들었다기보다는 영화계의 많은 분이 공동으로 연출하고 제작하는 영화다. 물론 내게는 굉장히 부담스런 프로젝트다. 특히 해외에 있는 영화계 인사들이 많은 기대를 하고 있다. 졸작이 나오면 큰일이다. 잘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이 상당하다."

-- 한여름에 영화를 촬영하는 건 70대 중반의 나이에 버거운 일 아닌가.

▲"촬영 전날인 어제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 테니스 4게임을 소화했다. 그 후 일본 출연자인 도미야마 대표와 점심을 먹었다. 오후 4시부터는 배우들이 입을 의상을 결정하고, 대사를 점검했다. 결국, 밤늦게까지 회의를 했다. 오늘 새벽 6시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그 정도 체력은 버틸 만하다."(웃음)

-- 임권택 감독의 절친한 친구다. 임 감독으로부터 조언을 들은 게 있는가.

▲"조언은 듣지 않았다. 다만, 촬영기간에 임 감독이 오시겠다고 하더라. 격려차 방문이다. 내가 영화를 찍는다니까 여러 사람이 방문해 주셨다. 이란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제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며 촬영 기간 내내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 24년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영화계에 입문했는데, 그전부터 영화를 좋아했나.

 


▲"솔직히 공직생활을 하면서 영화를 자주 보지 못했다. 영화는 모르는 상태다. 그러나 영화진흥공사 사장을 맡으면서부터 영화를 챙겨 보기 시작했다. 공부도 했다. 점점 영화에 심취했다. 1988년은 내 인생 분기점이다. 어느 한 분야의 일을 맡게 되면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편이다."

-- 이른바 경직된 공무원 조직에서 출발해 가장 '자유로운' 예술가로 삶의 방향을 바꾸었다.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건 우연이다. 우연한 계기로 인생은 바뀌고 행로가 결정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그때그때 당면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공직생활을 할 때도 군림하는 자세보다는 겸손해지려고 노력했다. 많은 사람을 사귀었고, 거의 적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 자세가 영화계에 와서도 도움이 됐다."

-- 그렇게 참다 보면 속병도 날 것 같다.

▲"때론 나도 감정이 폭발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자제하려 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나서 중학교 1년부터 고교 1년까지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모두 힘든 상황이었지만 나도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생활했다. 그런 힘든 환경을 견디면서 자제력을 키운 것 같다."

-- 영화인이 아닌 다른 꿈도 키우고 있나.

▲"좋은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만약 직업을 바꾼다면 현대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 연간 해외에 10여 차례 나서며 유명한 미술관은 다 찾아다닌다. 1960년대 초반부터는 서예를 했고, 국전(國展)에도 출품했다. 현대미술이나 서예와 연관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