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뷰
게시판 뷰페이지
[인人터뷰] 영화계에서 다시 관가로…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2013.8.13 국민일보)
작성자 dacine
날짜 2013.08.20
조회수 2,833
[인人터뷰] 영화계에서 다시 관가로…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  
  •  
  •  
  
 


로비스트가 돌아왔다. 아니 낙하산의 재림인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지난달 19일 대통령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됐다. 고위관료에서 민간 로비스트로 변신한 데 이어 불사조처럼 다시 관가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1993년 문화부 차관에서 물러난 후 부산영화제를 세계 5대 영화제의 하나로 정착시킨 그를 영화계에서는 ‘영화인들의 아버지’로 부른다. 1997년 대선 정국에서 양대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축사를 거절해 부산영화제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켰던 뚝심과 거액의 영화제 비용을 모금해낸 친화력과 같은 그의 경륜에 거는 문화계 안팎의 기대가 크다. 박근혜 정부의 주요 국정지표인 문화융성을 위한 김 위원장의 포부를 직접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7일 오전 서울 고궁박물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시대적 역할, 그리고 위원장으로서 생각하는 과제들은 무엇입니까.

“대통령께 보고 드린 대로 4가지 과제가 있습니다. 우선 소통과 융합을 추구합니다. 문화예술 현장의 목소리를 폭넓게 수렴해 도출된 현안에 대한 해법과 대안을 마련하겠습니다. 대통령도 직접, 또는 문화융성위원회를 통해 문화예술인과 소통함으로써 문화대통령으로 역사에 남도록 보필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봅니다.

둘째는 문화가치의 확산입니다. 인문학적 상상력, 창의력, 예술적 재능의 함양을 통해 문화의 역할과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하는 게 문화융성의 지름길입니다. 문화 교육을 위해 유아부터 노인까지 전 국민에 대한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을 강화하고 꾸준히 실시할 것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문화가치를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 확산시켜 국가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도록 할 것입니다.

셋째는 문화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문화산업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한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통일한국에 대비한 문화대국의 장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소통은 문화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 각 분야에 만연한 갈등을 푸는 데 필수적입니다. 문화융성위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습니까.

“기성세대들이 인성교육과 언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대화와 토론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예술교육이 취약하고 문화를 즐기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러니 토론이 아니라 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려고만 하고, 소통이 잘 안 되는 거죠. 사회 전체의 소통이 활발해지려면 마음을 다 터놓고 남의 말과 입장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주부터는 전국 각 도시를 다니면서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만나 지역현안과 그들이 보는 중앙 문화계와 정부 정책 등에 대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합니다”

-문화가치를 위한 교육을 강화한다는 것의 의미와 구체적 내용은 무엇입니까.

“학교교육의 경우 지금 초·중등 교육에서 예술적 재능이나 역사의식 등을 함양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어요. 입시교육에 매달리다보니 문화에 대한 소양을 키우지 못한 채 대학에 진학하고 몇 년 후 취업합니다. 그러다보니 인성이 메마르고 사람들과 소통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사회교육을 강화하는 것인데요. 눈에 잘 안 띄어서 그렇지 지금도 인문학 교육이 저변에서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부산에서는 백년어서원이라는 인문학 북카페가 5년 전 생겨 남녀노소를 대상으로 500차례 이상의 인문학 강의와 문화 강의를 펼치는 등 활동하고 있고요. 경북 칠곡군 인문학 아카데미는 지난 2010년부터 인문학 강좌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문화융성위원회는 이런 움직임을 더 북돋워주면서 마을회관이나 문화회관 등에서 이뤄지는 문화교육을 활성화해야 할 것입니다.”

-문화가치를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 확산시킬 구체적 방안이 있습니까.

“강조할 것은 미디어를 통한 교육입니다. 지금의 방송 프로그램, 막장드라마 등이 국민들의 정신세계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는 없습니다. 바른 역사의식과 문화적 소양을 키워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인문학분야 인재들이 필요하고, 이는 곧 일자리 만들기의 대안도 되지요. 예를 들면 작가지망생들에 대한 인문학 교육도 필요하고, 이를 위한 강사 양성과정도 대학원이나 사회교육기관에 설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요즘은 직장에서도 문화관련 교양강좌가 많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를 더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인들이 문화를 향유하고 인문적 소양을 키우려면 근로시간을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부터 4박5일의 여름휴가를 휴양지에서 다 쓰지 않고 서울에서 일부를 보냈습니다.

“토요휴무제 이후 여가문화가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곧 본격적 문화향수로 이어질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이나 고위직들도 여름휴가를 먼 휴양지나 해외에서 2∼3주씩 보내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럴 경우 금방 국정에 차질이 빚어질 겁니다. 따라서 당장은 일주일 정도의 휴가를 잘 쓰는 정도로 중용을 취하는 게 바람직해요.”

-문화산업과 ICT를 접목시키는 구체적 사례를 들어 주세요.

“영상미디어가 책을 대체해 가고 있습니다. 인터넷과 온라인게임, SNS 등을 어차피 뿌리칠 수 없다면 이들 산업에 인문학과 문화를 담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합시다. 즉 인터넷 애플리케이션과 온라인 게임이나 TV 오락프로그램을 만들 때 인문학 스토리텔링을 접목하는 과정을 거치자는 것이죠. 작가나 역사학자들의 재생산과정을 거쳐 고급화한 프로그램은 기존 것보다 부가가치를 더 높이면서 고용도 창출하는 한편 인문학과 문화가치를 확산시키는 역할도 할 것입니다. 특히 어린이들이 성장하고 사춘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영상미디어를 통해서도 역사와 문화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문학에 대한 기초교육 강화방안과 대학교에서 인문학을 부활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인문학의 위기는 결국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선천적으로 창의력을 타고 났기 때문에 잘 계발해 주면된다고 봅니다. 지금도 온라인게임에서는 한국이 가장 앞서가고 있습니다. 게임 이외의 분야에서도 다양한 잠재적 문화욕구를 충족시킬 아이디어를 인문학은 끝없이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나기(아줌마는 나라의 기둥)라는 단체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을 위해 중산층 가정에 홈 스테이를 하도록 주선하는 사업을 펼쳐 성과를 거뒀습니다. 공유경제 여행사 에어비엔비는 전 세계 어느 도시에도 널려 있는 주택의 빈 방을 관광객들과 나눠쓰도록 인터넷을 통해 알선하는 아이디어 하나로 세계적 사업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전 세계 192개국 3만5000여개 도시에 35만개가 넘는 지역주민의 집을 숙소로 제공하고 있으니까 대성공이지요. 결국 아이디어의 경쟁입니다. 문화융성위원회는 창의력을 사업과 연결시키는 프로젝트들을 개발·제시하고, 미래창조과학부에 관련 예산이 있으니까 연결만 시켜주면 됩니다.”

-한류의 확산 분위기가 다소 주춤한 느낌입니다. 각 문화산업의 진흥책이 어떤 게 있을까요. 또 이를 관광산업과 연계하는 방안이 있습니까.

“문화상품화와 ICT와 접목하는 일은 계속 해 나갈 겁니다. 우선 영화 쪽에서 3D, 4D를 동원한 작품들, 미스터GO, 설국열차 등이 나왔습니다. 관광산업은 지역문화축제나 관광자원은 많지만, 천편일률적이어서 고유의 색깔이 없고, 이를 상품화할 아이디어 역량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 에피소드, 민담 등을 최대한 상품화할 필요가 있고, 여기에도 인문학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일본만 해도 작은 마을 하나하나에도 모두 독특한 지역 캐릭터가 선정돼 있고, 특유의 관광상품이 개발돼 있습니다.”

-문화융성위 위원은 과거부터 각 문화 분야와 산업을 대표하는 전문가들이 주로 발탁됐습니다. 장점이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관점과 참신한 접근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18명의 문화융성위 위원들 다 잘 아는 분들이고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을 것으로 봅니다. 인문정신, 전통문화, 문화예술, 문화산업, 문화가치 확산 등으로 구분된 5개 전문위원회는 문화융성위가 제시한 의제를 바탕으로 구체적 과제를 도출해 연구보고서를 만드는 싱크탱크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한 문화융성위가 다루지 않는 분야, 즉 미디어, 건축, 무용, 사진 등의 융성정책을 마련토록 하겠습니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전체위원회의는 원래 분기별 1회인데 2∼3회씩 열려고 합니다. 조만간 출범할 예정인 5개 전문위원회도 비상임이지만 수시로 과제를 주는 등 상설기구처럼 운영할 계획입니다.”

-문화융성위원회의 예산은 충분한가요. 사업비용을 어떻게 조달하고 집행하시렵니까.

“위원회는 대통령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예산은 회의경비만 책정됩니다. 정책이나 개별 프로젝트가 개발되고 승인되면 그것의 추진은 해당 부처에 할당하고, 그 부처의 예산으로 집행하는 방식입니다. 따라서 위원회가 사업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돈이 없더라도 대통령 기구라는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결정된 정책을 관련부처들이 결코 홀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위관료에서 영화인,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변신하면서 역할 갈등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공무원이란 국민에게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기본에 충실하면서 (정책 이해관계자 등) 상대방과 대등한 위치에서 격의 없이 대하려고 늘 노력했습니다. 영화진흥공사 사장과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을 거쳐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하면서도 그런 친화력 덕분에 영화인들과 쉽게 동화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영화계에선 지금도 그렇지만 신·구세대간 대화가 거의 이뤄지지 않거든요. 저는 양쪽 모두 친하기 때문에 서로 대화하도록 도와주고 연결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3년 전부터는 영화계 동반성장협의회 위원장을 맡아서 투자·배급·상영사인 대기업과 제작자인 중소기업간 갈등과 현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상충되는 이해와 의견을 조정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역할이죠. 표준계약서 작성, 근로조건 개선, 독과점 완화 등이 과제인데 최근 극장과 투자자간 영화수입 배분비율을 5대 5에서 4.5대 5.5로 조정하는 성과를 거뒀어요. 공생과 동반성장의 길을 찾아 이해 당사자에게 서로 양보와 이해를 하도록 설득하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화력과 설득의 수단이었던 ‘술 실력’ 때문에 건강에 지장은 없습니까. 2006년 이후 술을 끊으셨다는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부산영화제에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술이 일정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문 탓에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술을 권하는 바람에 한동안 고생을 했습니다. 지금 술은 전혀 하지 않고 매주 일요일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테니스를 칩니다.”

만난 사람=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 김동호 위원장은

△1937 강원 홍천 출생 △경기고 △서울대 법대 △문화공보부 문화국장, 공보국장, 국제교류국장 △영화진흥공사 사장 △문화부 차관 △공연윤리위원장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 전문대학원장(현) △대통령직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현) △국전 입선(1964) △황조근정훈장(1993) △프랑스 정부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