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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가다 끝 (씨네21 878 2012.11.07)
작성자 dacine
날짜 2012.11.09
조회수 2,876

[스페셜1]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을 가다 끝

글 : 윤혜지 | 사진 : 오계옥 | 2012-11-07  

연출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끌어내라

김선아 프로듀서의 ‘프리 프로덕션4’ 수업 지상중계



학생들의 동선이 궁금해 슬쩍 학생인 양 죽전역에서 출발하는 셔틀버스에 끼어 앉았다. 5분이나 달렸을까 싶은데 어느새 학교다. 조금 일찍 도착한 까닭에 서관 복도를 배회하게 됐다. 김동호 대학원장이 직접 찍은 사진 속 영화인들의 웃음이 빈 벽을 채우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이 좀 지나면 이 벽은 이곳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현장스틸 혹은 그들의 작품으로 채워질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로 여기에 머무는 학생들의 시간을 영화제작과정 중에서도 프리 프로덕션 단계로 비유할 수 있겠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의 네 번째 수업은 프로덕션에 관한 수업이다. 김선아 교수가 진행할 ‘프리 프로덕션4’ 수업에서는 영화 제작에 관한 사전준비에 대해 배우며 아이템 및 시나리오를 개발하게 된다. 싸이더스의 전신인 우노필름에서 <돈을 갖고 튀어라>를 제작하며 프로듀서로 데뷔한 김선아 교수는 싸이더스가 영화제작사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던 때 든든히 한축을 담당했던 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봄날은 간다> <지구를 지켜라!> 등 그는 감독의 개성이 넘치면서도 메시지가 좋은 작품을 한눈에 알아보는 특별한 안목을 갖고 있었다.
 



제작의도 발표부터 ‘돌직구’ 쏟아져



‘프리 프로덕션4’ 수업은 시나리오를 디벨롭하는 과정과 피칭 및 트레일러 제작, 투자와 촬영 계획을 짜는 프로덕션 워크숍 과정의 두 단계로 나뉜다. 수업은 보통 3인 체제로 진행되는데, 스크린 라이팅 트랙의 학생이 휴학한 관계로 오늘은 디렉팅 트랙의 학생과 프로듀싱 트랙의 학생뿐이었다. 윤정원 학생이 디렉팅 트랙을, 서부경 학생이 프로듀싱 트랙을 맡은 중편 <프래절>(가제)의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이미지 작업 계획안까지 짜는 것이 이 시간의 목표다. 스크린에 <프래절>의 프레젠테이션이 걸리고 서부경 학생이 발표를 시작했다. 첫 페이지부터 김선아 교수의 난도질은 시작된다. 제작의도를 발표하자마자 문장이 애매하게 쓰인 지점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이게 제작의도로 적절한 말일까? ‘밀도있고 섬세한 연기로 표현하’는 건 연기자의 몫이야. 연출자는 그 연기를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해야지.” 군더더기 없는 ‘돌직구’지만 이를 전달하는 김선아 교수의 어조는 무척 자상하다. 시놉시스에 이어 등장인물에 대한 발표가 이어졌다. 발표에 이어 김선아 교수는 정확한 눈으로 배우를 고르는 팁과 단시간 내에 배우에게서 많은 것을 보는 법을 알려준다.
 



서부경 학생의 발표가 끝나자 윤정원 학생이 작품의 비주얼 컨셉과 참고 영화를 발표했다. 비주얼 컨셉 피칭은 소품과 공간, 이미지의 3단계로 구성됐다. 준비된 이미지들을 모두 보고 난 뒤 김선아 교수는 슬라이드를 처음부터 다시 넘기며 각각의 이미지들을 빠짐없이 분석하고, 그 이미지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이 장면이 왜 80년대 홍콩영화와 관계되는지를 설명해봐”라거나 “그 의도를 색과 톤에서 찾겠어, 아니면 쫓기는 모습 자체에서 찾겠어?” 혹은 “이 공간적 이미지를 너의 영화에서 어떻게 드러내려는 거니?” 등의 질문이 속사포처럼 이어진다. 수업은 점점 열기를 더해간다. 슬라이드 화면만이 반짝이고 윤정원 학생의 목소리가 조곤조곤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알 수 없는 긴장과 묵직함이 강의실을 채운다. 윤정원 학생의 낮은 목소리가 그치면 김선아 교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날아와 꽂힌다. 한없이 부드러운 어조로 연출자의 의중을 묻고 있지만 그 소리에 담긴 단단한 카리스마에 대답은 슬쩍 허공을 맴돈다. 침잠해가는 윤정원 학생의 목소리를 격려하듯 이따금씩 김선아 교수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꽉 찬 긴장을 깨고 강의실에 여유를 심는다. “얘 또 너무 멀리 갔다. 알았어. 그래, 이거 아주 홍콩영화 스타일이야. (일순간 좌중 폭소)”
 



윤정원 학생이 참고 영화로 삼은 작품은 임상수 감독의 <눈물>과 하니 스스무 감독의 <불량소년>, 그리고 이시이 소고 감독의 <꿈의 미로>다. 피칭이 이어질수록 김선아 교수의 미간이 점점 좁아진다. “임상수 감독님이 <눈물> 전에 <나쁜 잠>을 만들었는데 그때 굉장히 취재를 많이 하셨거든. 실제로 가리봉동에 가서 그 애들이랑 섞이고 어울렸어. 취재하지 않고 참고하는 것으로도 너는 이런 장면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니? 하니 스스무 감독의 영화는 내러티브 테크닉에서 무척 자유롭지. 너의 시나리오는 내러티브가 잘 살아 있잖아. 그럼 이건 너의 영화와 어떻게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지? <꿈의 미로>는 컷이 무척 몽환적인데 <눈물>은 아주 거칠고 리얼해. 이 두 가지가 한 영화에 담을 수 있는 톤일까?”
 


김선아 교수

취재하지 않고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



내내 연출자를 향한 질문만 던지던 김선아 교수가 이제야 ‘정답’을 내놓는다. “하고 싶은 건 넘치는데 그러면 너 가만히 있으면 안돼. 나이브하게 날것을 담겠다고 하면서 참고하겠다고만 하면 그건 아주 다른 영화야. 시나리오는 열려 있다고? 그럼 연출자는 뭘 해야 하니? 그래서 취재가 필요한 거야. 연출자가 뭐든 알고 있어야 연기자에게서 원하는 걸 끌어낼 수 있겠지?” 학생들의 눈에서 길이 보인다. 아이디어가 부유하고, 갈팡질팡하던 기획이 이제야 차분하게 정돈이 된다. 발표를 마무리하고 김선아 교수와 두 학생은 본격적으로 취재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일정을 체크하고, 시나리오 받을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물색한다. 오늘은 여기까지지만 앞으로 남은 학기 동안 예산안을 정비하고 스탭과 캐스트를 점검하고, 트레일러를 촬영하게 된다.
 



“너의 영화와 어떤 관계가 있니?” 김선아 교수가 학생들에게 수없이 반복하는 질문이 바로 이 수업의 ‘맥’(脈)이다. 자신이 프로듀서로 활동한 경력 때문인지 프로듀서로서 숙지해야 할 지침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려줄 수 있는 그다. “‘단어’로 학생들을 들들 볶아요. 의도를 분명하게 하는 게 중요하거든요. 눙쳐서 말하면 콘텐츠가 아주 달라지게 돼요. 결국 프리 프로덕션은 연출자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게 뭔지 끌어내는 동시에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과의 괴리를 좁혀가는 작업이죠.” 과연 김선아 교수는 학생들에게 프로듀서로서 다시 없을 든든한 선배이자 스승이자 바이블이다. 그의 밑에서 혹독하게 수련 중인 이들이 앞으로의 충무로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