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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15년 된 명함 버리고 75세 늦깎이 감독 데뷔(중앙선데이메거진 2012.07.14)
작성자 dacine
날짜 2012.07.31
조회수 2,146

 

부산국제영화제 위원장 15년 된 명함 버리고 75세 늦깎이 감독 데뷔

단편영화 JURY 촬영 마친 김동호 전 위원장

그러니까 2년 전 이맘때였다. 15년간 몸담아 온 부산국제영화제를 떠나는 김동호(75) 명예집행위원장에게 퇴임 후 계획을 묻자 그는 “한학과 문인화를 공부해 내실을 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문화 불모지로 불렸던 부산에서 국제적 권위의 영화제를 만들기 위해 밤낮과 자리를 가리지 않는 ‘술자리 네트워킹’을 했다. 그런 고단한 이력을 익히 알던 터라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꿈이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늘 다른 사람 영화만 보고 다녔으니 이제 내 스스로 영화 한두 편 찍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올 초 그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으로 취임했다. 영화계는 역시 그에게 은퇴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감독 김동호’의 꿈을 이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1일 촬영을 마친 단편영화 ‘JURY(심사위원)’가 데뷔작이다. 2년 전 인터뷰에서 말한 대로 문화체육부 차관 등을 지낸 공직생활이 인생 1막, 부산영화제 위원장 생활이 인생 2막이었다면 75세에 인생 3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JURY’는 올가을 열리는 제10회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된다. 국제영화제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사이에 빚어진 갈등을 다뤘다. 부산영화제가 발굴한 스타 중 한 명인 재중 동포 장률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다.

‘김동호 감독’의 데뷔가 흥미로운 이유는 또 있다. 20분이 채 안 되는 단편영화 한 편에 품앗이하듯 모여든 사람들의 면면이다. 주연배우가 안성기·강수연에 보조출연자가 심지어 임권택 감독이다. 안성기·강수연은 김 위원장이 “‘부산(영화제) 패밀리’ 중 성골(聖骨)”이라고 농담할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나눠왔다. 조감독은 ‘만추’ ‘가족의 탄생’의 김태용 감독이, 촬영은 ‘괴물’ ‘살인의 추억’ ‘부러진 화살’의 베테랑 김형구 촬영감독이 맡았다. 게다가 편집은 강우석 감독이 한다. 보통 영화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스태프 라인이다. 모두 김동호라는 사람에게 반한 김동호의 사람들이다. 2차 집단적 관계에서 이런 자발성을 갖기란 사실 흔한 일은 아니다.

영화계 원로라고 다 이런 대접을 받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어른으로 존경받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몇 년간 영화 분야 취재를 하는 동안 들은 그의 평판은 그대로 믿기엔 너무 훌륭했다. 열이면 열 모두 칭찬하는 것도 처음엔 좀 이상했다. 그래서 ‘흉 볼 건 없냐’고 주변 사람들에게 일부러 물어본 적도 있었다.
소득은 없었다. 영화제 말단 직원부터 해외 출장 때 같은 방을 쓴 프로그래머에 이르기까지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런 평가는 이란 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55) 같은 세계적 거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마흐말바프는 현재 한국에 와서 ‘김동호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다. ‘JURY’ 촬영장에도 카메라를 들고 왔다. 배우도, 감독도 아닌 영화 행정가를 주인공으로 한 유례 없는 다큐멘터리도 곧 나올 예정이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사진 연합뉴스 | 제279호 | 2012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