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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 서울역서 찍은 영화, 같은 공간서 복합공연으로”(경향신문 2012.09.18)
작성자 dacine
날짜 2012.09.21
조회수 2,590

 

 

ㆍ무성영화에 변사 공연 합친 ‘청춘의 십자로’ 감독 김태용

계절의 온도가 기억해내는 것들이 있다. 영화 <만추>(2011)도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어느 늦가을 시애틀에서 만난 남녀(현빈, 탕웨이)의 짧은 인연을 그린 <만추>는 옷깃을 여미는 스산한 계절이 찾아오면 다시금 재회를 꿈꾸게 되는 영화다.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1999) <가족의 탄생>(2006)을 잇는 세 번째 장편 <만추>를 떠나보낸 이후 김태용 감독(43)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계절을 보냈다.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가운데, 차이밍량, 허안화, 구 창웨이 감독과 함께 다음달 4일 개막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일 옴니버스 영화 <뷰티풀 2012>를 찍었다. 지난 3월 중국에서 개봉한 <만추>가 역대 한국 영화 중 최고 흥행수입인 6840만위안(약 110억원)을 벌어들이며 ‘흥행감독’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크고 작은 영화제에 힘을 보태며 충무로의 든든한 허리 역할을 하고 있고, 최근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의 감독 데뷔작 에서는 조감독을 자처했다. 이 와중에 연출을 맡은 복합공연 <청춘의 십자로>가 오는 26일부터 3주간의 장기공연에 들어간다. <청춘의 십자로>는 무성영화 위에 변사가 목소리와 해설을 더하는 가운데 무대 위 배우들이 라이브 밴드에 맞춰 연기와 노래를 하는 복합공연이다.

 
 

 


▲ 외국선 새 공연양식으로 관심
26일 장기공연 돌입하는데
예매 시작하자마자 미어터져
웹툰 ‘신과 함께’ 영화화 추진


- 2008년 한국영상자료원 개관 기념으로 올린 공연 <청춘의 십자로>가 지난 4년간 국내 주요 영화제를 비롯해 뉴욕, 멕시코, 런던 등 세계 곳곳에서 공연됐습니다.

“시작은 ‘이벤트’에 가까웠는데 하다보니 욕심이 났어요. 어렵게 복원된 무성영화가 박물관에 들어가지 않고 현재적으로 상영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공연을 본 각국 관계자들의 초청이 이어졌죠. 스크린과 무대가 동시에 진행되는 방식을 외국 관객들은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새로운 공연양식으로 생각했어요. 특히 변사의 목소리까지 음악적인 요소로 받아들이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26일부터 ‘문화역 서울284’(구서울역사)에서 하는 공연은 첫 장기공연이에요. 다음달 13일까지 총 20회를 하는데 회당 150석밖에 안되어서 예매 시작하자마자 미어터지고 있어요.(웃음) 부산영화제 기간엔 남포동 부산극장에서 5, 6일 공연이 있고요.”


- 옛 서울역이라는 공간이 주는 의미도 크겠어요.

“예, <청춘의 십자로> 남자 주인공이 서울역 수하물 운반부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든요. 1934년 이 영화를 서울역에서 찍었는데 80년 후 같은 건물에서 공연을 본다는 건 굉장히 이상한 시간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 서울엔 70~80년 된 건물이 없어요. 특히 실내가 유지되고 있는 곳은 거의 없죠. 그렇게 건물의 역사들이 모두 단절된 시대에 영화를 통해 무언가 이어진다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어요. 스크린, 무대, 객석이 아니라 ‘모던 보이’들이 노는 살롱같은 느낌으로 공연될 거예요.”

- 올해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열리게 될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에 제출한 작품 역시 ‘변사 프로젝트’ 더라고요.

“세계적으로 무성영화는 있었지만 그 영화를 설명하는 ‘내레이터’ 즉 변사는 한·중·일 동아시아에만 존재했던 특이한 방식이었어요. 서양 무성영화는 단순한 이야기, 간단한 자막으로 관객을 이해시켜야 했어요. 긍정적으로 보면 그 안에서 몽타주 기법 등의 영화 미학이 발달했죠. 하지만 한국 무성영화는 이야기와 인물관계가 훨씬 복잡해요. 아예 변사의 해설까지 염두에 두고 만들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는 사운드에 의지하지 않으면서 사운드가 있는 영화를 처음부터 만들어온 거예요. 한국의 무성영화는 스크린이 아니라 무대 안에서 비로소 완성되었던 거죠. 올해 APM에서 선보일 ‘변사 프로젝트’는 극영화로 당대 최고 스타였던 변사와 무성영화 시대의 여배우의 사랑이야기예요. 하지만 발성영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두 사람의 인생이 급격히 뒤바뀌게 되죠.”



- 주호민 작가의 인기 웹툰 <신과 함께>도 영화화하고 있죠? 100억원대의 대작이 될 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과 함께> 중 ‘저승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어요. 죽긴 했는데 이승에 대한 미련으로 떠나지 못하는 원혼들,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생을 계속 반추해야 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새롭게 판타지를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구요. 시나리오를 완성해 봐야지, 아직 정확한 규모까지는 모르겠어요.”

- 얼마전 <만추> DVD가 출시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는 <만추>는 어떤 느낌인가요.

“아니 어떻게 이렇게 좋은 영화를!(웃음) 아쉬움도 실패도 실수도 많은데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영화예요. 사실 이야기 자체가 지루하잖아요. 길고, 느리고. 하지만 10분 만에 할 수 있는 것을 1시간 동안 이야기 할 때 생기는 힘이란 게 있잖아요. 제가 늙어가는 것일 수도 있는데, 점점 효율이 큰 가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뭔가를 한시간 만에 얻어내는 것이 두시간 만에 얻어낸 것보다 더 좋은 건 아니라는 거죠. 그냥 다른 거지. 인간관계에서도 효율이라는 미덕을 빼고나면 완전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요. 헤어짐을 빨리 극복하는 게 늦게 극복하는 것보다 더 좋은가? 사랑에 1초 만에 빠지는 것이 1년 동안 서서히 빠지는 것보다 나쁠까? 그저 각각에 어울리는 시간이 있는 것뿐이죠. 그것을 배운 것 같아요. 물론 우정은 천천히, 사랑은 빨리 빠지는 게 역시 좋을 것 같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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