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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감독에 대학원 학장으로..'영화아빠'는 아직도 할일 태산 (2012-02-02)
작성자 dacine
날짜 2012.03.23
조회수 3,031

   
 

 대한민국 영화외교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데스크승인 2012.02.02   이효선 | hyosun@joongboo.com  

   

‘대한민국 영화 외교관’, ‘영화 청년’, ‘미스터 킴(Mr. Kim)’,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영원한 아버지’란 수식어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영화제가 짧은 기간 내에 아시아 최대의 영화 축제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데는 영화제의 태동부터 인생의 궤를 함께해온 그의 아우라가 컸다. 15년간 최일선에서 부산영화제를 이끌다 지금은 명예집행위원장으로 물러난 김동호 위원장의 얘기다.
그에게 올해 새로운 직함이 두 개나 생긴다. 하나는 10주년을 맞은 아시아나국제영화제의 개막작 연출을 맡은 ‘영화감독’이고, 다른 하나는 3월에 첫 학기가 시작되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의 초대 ‘학장’이다.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 CGV에서 만난 그는 얼핏 옆집 할아버지 같았다. 희끗한 머리에 선한 눈매, ‘허허’ 하는 인자한 웃음소리에 덩달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런데 내면에는 젊은이 못지않은 영화에 대한 열정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숨어있다. 한국 영화계 인사들이 그를 존경해지마지 않는 까닭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서울대 법대생이 영화계의 대부가 되기까지
거물급 영화인인 그는 젊은 시절 행정가를 꿈꾸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후 당시 문화공보부에 근무했고, 이후 영화진흥위원회의 전신인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발령을 받으면서 비로소 영화와 연을 맺게 된 것이다.
그가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부임할 때만 해도 영화계의 반대가 거셌다. 영화감독협회가 취임 반대 성명을 냈을 정도다.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물러날 때 국내외 영화계 인사들이 한 목소리로 애석해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상상이 잘 가지 않는다.
운명의 신은 그와 영화를 질긴 끈으로 묶어놓았다. 예술의전당 사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을 잇달아 맡았고, 결국 우리나라에 변변한 영화제가 없던 시절, 친분을 쌓은 젊은 영화인들과 부산국제영화제를 출범시킨 주인공이 됐다.
영화계 제일의 주당으로 꼽히는 그가 ‘술’로 영화계를 평정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스스로 밝히는 주량이 소주 열 병, 양주 두 병, 폭탄주는 한 자리에서 스무 잔 넘게 거뜬히 마신단다. 오랜 친구인 임권택 감독은 그가 “사람을 취하게 하는 취선(醉仙)”이라고도 했다.
“공무원 출신이니 낙하산 인사라고 반대를 했던 거죠. 술이 매개도 됐지만 사람들과 진솔하게 만나고, 남양주에 종합촬영소도 만들고, 영화계를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했습니다. 결국 영화인들과 사귀고 친구가 될 수 있었죠.”(놀라운 사실은 그와 떼래야 뗄 수 없던 존재로 여겨지던 ‘술’을 끊은 것이다. 한국 나이로 70세가 되면서 금주하기로 했단다. 그 전까지 여한이 없을 정도로 마셨다고.)
그가 존경받는 것은 단지 영화계에 세운 공로 때문만은 아니다. 고령의 나이로 한 해의 절반을 해외에 머무르지만 다른 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이코노미 클래스를 고집할 만큼 청렴했다. 그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탄 것은 딱 한 번. 초청한 해외영화제에서 비용을 댔기 때문이다. 오전 5시면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는 성실함이 늘 몸에 배어 있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영화제 경영 철학에 대해 “정치적인 외압을 막거나 스폰서로부터 예산을 끌어오고 해외 네트워킹에 주력하는 등 대외적인 활동을 주로 했다”면서 “영화 선정 등 대부분의 일은 스태프 자율에 맡겼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에 2천개가 넘는 영화제가 있는데, 최단 시일 안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부산영화제만의 성격과 전략이 주효했기 때문입니다. 아시아의 새로운 감독, 영화를 발굴하고 제작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 거죠. (부산영화제가 더 성장하려면) 지금까지 지켜온 영화 선정이나 아시아 영화 허브로서 아시아 영화산업을 지원하고 발전하는 역할을 꾸준히 해 나가야 합니다.”
  
 
▶영화배우를 넘어 단편영화 감독이 되다
그가 영화계 안팎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머물 때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며 퇴임할 때 공언했다. 나만의 영화를 한 편 반드시 찍겠노라고. 그의 바람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올 가을 아시아나국제영화제 개막 작품으로 공개되는 단편 영화의 시나리오 작업이 거의 막바지다. 영화제 심사를 주제로 영화제의 이면사를 다룬 15분짜리 작품이다.
영화제의 큰 어른이 감독으로 데뷔하는 만큼 라인업도 화려하다. 임권택 감독이 포장마차의 단골 노인 역을 맡았고, 안성기가 포장마차 주인 역을 연기한다. 실제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한 강수연은 배역도 심사위원, 박중훈은 안성기 포장마차의 젊은 단골손님 역이다. 자칫 딱딱하고 단순한 소재일 수 있지만 숱한 영화제 심사를 맡아온 김 위원장의 경험담이 어떤 식으로 영화에 투영될지 자못 기다려진다.
“단편인데 영화에 관한, 영화제 심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제 심사하는 과정을 에피소드로 그렸어요. 러닝타임은 찍어봐야 알겠지만 15분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요. 시나리오는 거의 완성 단계에 있습니다.”
앞서 네 편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연기의 맛을 본 그가 배우들에게 어떤 주문을 할지도 궁금해진다. 이재용 감독의 ‘정사’, 한국계 중국인인 장율 감독이 만든 ‘이리’에 출연했고, 프랑스 영화에도 얼굴을 비쳤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는 한지 장인으로 깜짝 출연했다.
“영화마다 다양한 역할로 출연했어요. 가장 최근에 출연한 영화가 ‘달빛 길어올리기’죠. 한 때 잘나가던 제지업자였지만, 사업이 잘 안 돼서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으로 나와요. 배우 예지원에게는 자기 아버지 얘기도 들려주고, 박중훈한테는 전 세계 제지 현황을 알려주기도 하는 역할이죠.”

▶한국 영화의 미래 ‘실무 교육’에 달렸다
배우로, 감독으로 거듭 변신해온 김 위원장이 올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영화 인재의 양성’이다. 다음달 2일 정식 개원하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기 때문. 그는 “중앙대 예술대학과 첨단영상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은 있지만, 교수보다 원장의 입장에서 대학원을 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 일이 굉장히 복잡하고 많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통해 철저히 실무 중심, 현장 중심의 영화 인력을 양성한다는 게 김 위원장의 구상이다. 1학기 12명, 2학기 13명의 정예인력을 선발해 한국영화에 부족한 기획과 연출, 제작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교육과정을 편성했다.
“다른 학교의 학부나 영화학과는 주로 단편영화를 만들지만 우리는 2년 동안 장편영화를 만들고 졸업할 수 있게 할 계획이죠. 학생들이 대학원 재학 중에 상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성공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특화할 겁니다.”
교수진도 쟁쟁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을 지낸 박기영 감독,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 ‘친구’를 만든 곽경택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이명세 감독 등 한국 영화계의 기라성들이 총출동한다. 프로듀싱 과목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만든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 봄 영화사의 오정완 대표, 싸이더스FNH의 김미희 대표가 맡았다. 시나리오는 ‘만추’를 리메이크한 김태용 감독과 미국 USC대학의 두 교수를 초빙했다.
퇴임 후 한 가지 소망이라던 영화감독 데뷔가 목전이니, 다시 ‘이것만은 꼭 해야겠다!’ 품은 바람은 없는지 물었다.
“여력이 더 있어야 하는데, ‘대학원에서 1년에 여덟 편의 장편영화를 만들어야 해서 그것만도 만만치가 않을 것 같네요.”(웃음)

Tip: 부천국제영화제를 비롯한 다른 영화제의 발전을 위해 한 말씀 해 주세요.
“그 영화제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을 계속 잘 살려나가야 합니다. 외부 압력에 휘둘리지 않고 상영작의 선정과 심사 등은 원칙을 계속 지켜야 하고요.”
이효선기자/hyosun@joongboo.com
사진=강제원기자/jewon@